엘리의 정원
허리가 38인치라고? 본문
아빠랑 바지를 사러 갔어요.
어버이날이라서요.
아빠는 배가 많이 나왔어요.
팔다리는 가늘어졌는데, 배만 동그랗게 튀어나왔어요.
당뇨 때문이라고 알고 있지만,
아빠는 술을 끊지 못하세요.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잔소리가 별로 효과가 없다는 걸 알거든요.
바지를 고르는 것도 일이에요.
인터넷 쇼핑은 꿈도 못 꿔요.
키가 작고 배만 나왔으니
직접 입어봐야만 해요.
매장에 갔어요.
아빠가 “허리 38이야.”라고 말했어요.
38 사이즈를 펼쳐봤어요.
순간 저는 너무 놀라 말했어요.
“아빠, 이거 너무 큰데? 36 입어 봐.”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바지를 받아 들고
피팅룸으로 들어갔어요.
잠시 뒤, 커튼이 열렸어요.
바지는, 너무 작았어요.
허리가 터질 것처럼 말이에요.
저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어요.
“아빠~ 진짜 살 빼야 하는 거 아냐?”
아빠의 표정이 굳었어요.
그리곤 말없이 바지를 벗고 걸어놓더니,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매장을 나왔어요.
그 뒷모습이 어쩐지
마음에 남았어요.
말하지 않았지만,
조금 미안했어요.
다음엔 놀리지 않고
딱 맞는 바지를 찾아야겠어요.
엘리의 정원에서.
가끔 말이 너무 빨리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마음에 꼭 남더라고요.
《정원 끝, 작은 대화》
피코: “나는… 아빠가 입는 걸로 충분한데.”
엘리: “응, 다음엔 웃지 않을게.”
'정원의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나무에 꽃이 핀다고요? (0) | 2025.05.11 |
---|---|
새벽 네 시, 피코가 불렀어요 (0) | 2025.05.07 |
초록 손의 정체 (0) | 2025.05.04 |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 이제야 진짜 봄 (0) | 2025.04.26 |
피코처럼 시원하게 (0) | 2025.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