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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의 정원

새벽 네 시에피코가 저를 깨웠어요.나가자고 했어요. 하지만 너무 피곤했어요.잠든 지 얼마 안 됐고,점심엔 가족 식사가 예정되어 있었거든요.그래서 “하우스~”라고 외치고그냥 다시 잠들었어요. 다섯 시가 됐을 때피코가 또 깨웠어요. 이번엔 짜증을 내면서 일어났어요.피코가 앞발을 팡팡 구르며 너무 좋아했어요.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갔어요.그때까지만 해도그냥 산책이 하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어요.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라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얼마 걷지 않아피코가 묽은 변을 싸고,세 발자국을 걷더니 토를 했어요. 아, 그랬구나…그걸 보자그제야 상황이 이해됐어요. 그때 피코가뒷발을 세차게 차더니스스로 신호를 주는 듯,앞발을 팡팡 두 번 구르고신나게 뛰어나갔어요.시원했는지,살 것 같았는지. 그 모습을 ..

오늘은 피코의 미용 날이었어요.횡단보도를 건너는데,두 할머니께서 우리 앞을 천천히 지나가셨어요. 그중 한 분의카키색 재킷에 쓰인 문장이 눈에 들어왔어요. Ticket to Anywhere꽃 자수가 곁들여져 있었고,그 문장을 보는 순간,마음속에 조용히 바람이 지나가는 듯했어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문장 하나가왜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졌을까요. 그 순간, 마음속으로 묻고 있었어요.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을까?” 혹시 여러분은,어디든 갈 수 있는 티켓이 있다면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오늘, 피코가 산책 중 어떤 집 앞에 묽은 변을 쌌다.최선을 다해 치웠지만, 아스팔트 틈 사이에 남은 자국은 끝내 지워지지 않았다.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정말 미안했고, 민망했고, 어쩐지 수치스러웠다. 그런데 문득, 피코는 언제나 자기표현에 거리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마킹이든, 짖음이든, 피코는 자기를 숨기지 않는다. 나는?나를 감추기 위해 늘 노력하며 지냈던 것은 아닐까.보이지 않게 치우고, 없던 일로 만들고,수치심이라는 이름 아래 덮어두고 있었던 것들. 오늘은 피코를 통해‘표현’과 ‘수치’ 사이에 놓인 나 자신을 조용히 바라보게 되었다. 나도 피코처럼 조금은 더 솔직해져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