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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의 정원

옛날 옛적, 아주 깊고 푸른 바다 밑에작은 조개 하나가 살고 있었어요. 조개는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지만,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꼭 감싸고 있었어요. 조개는 바다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물고기들의 노래, 파도의 속삭임,달빛이 물에 닿는 소리까지도요. 하지만 껍질을 꼭 다문 채로만 살았어요.바깥세상이 무서웠거든요. 어느 날, 작은 모래알 하나가조개 속으로 들어왔어요. 모래알은 날카롭고 아팠어요.조개는 깜짝 놀라 더욱 껍질을 꽉 다물었어요. "아파..."조개가 울먹였어요. 하지만 단단한 껍질이 속삭였어요."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모래알은 나가지 않았어요.조개는 어쩔 수 없이 그 아픔과 함께 살아야 했어요. 시간이 흘렀어요.조개는 모래알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어요.대신 부드럽게, 조금씩 감싸주기..

꿈에서나는 커다란 배 위에 있었어요. 망망대해를 가르는 배.어디서 출발했는지도,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그 배에 머물고 있던 나는 왠지 모르게 설레어했어요. 그 배에서 내리려면시험을 통과해야 했어요.‘여권’을 받아야만다음 세계로 건너갈 수 있다는그런 설정이었어요. 나는 한 단어를 계속 외우고 있었어요.익숙하지 않은 철자. 같은, 어딘가 이상한 단어. 꿈속에서, 그건 '과거'를 뜻했어요.하지만 아무리 반복해도그 단어가 외워지지 않았어요. 노트에 줄을 긋고, 다시 쓰고,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외웠지만자꾸만 틀렸어요. 배에서는 파티가 열렸고,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고기를 굽고 있었어요.그 속엔오래전 인연이었던 전 남자친구도 있었어요. 그는 웃으며 말했어요."같이 고기 좀 먹어줄래.?" 나는 예의상 고개를..

국민학교 1학년. 처음 받은 숙제는종합장을 삼등분으로 접고크레파스로 단어를 써오는 거였어요. 그리고 선생님은 덧붙였어요.“크레파스가 번지니까, 뒷면은 쓰지 말아요.” 그게 숙제의 규칙이었어요. 집에 돌아와 숙제를 하는데엄마가 물었어요.“왜 뒷면은 안 써?” 저는 선생님 말대로 했다고 말했어요.그런데 엄마는, 제가 잘못 들은 거라고 했어요.“종이가 아깝잖아. 뒷면도 써.” 그렇게,뒷면까지 써서 숙제를 해갔어요. 그리고 다음 날,선생님은 제 뺨을 때렸어요. 눈물이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흘러내렸어요.너무 서러웠어요. 마침 비가 오던 날이었고엄마가 우산을 들고 학교로 저를 데리러 왔어요. 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어요.엄마도 따라서 눈시울이 붉어졌고저를 앞질러빠른 걸음으로 운동장을 가로질렀어요. 나는 ..

얼마 전, 쿠팡 물류센터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어요.주변에서는 겁을 주는 이야기들이 많았어요.“엄청 힘들다”, “지옥이다”… 그런 말들이요.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다녀왔어요. 예전에 유통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쿠팡 물류센터는 어떻게 운영될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찝찝해 보이는 작업화를 신었고,제 사이즈는 없어서 헐렁한 신발을 신고 하루를 보냈어요.조끼도 낡고 더러워 보였지만, 그냥 입었어요. 처음에는 소분 업무를 맡는 줄 알았는데갑자기 무전이 오더니, 다른 구역으로 인원을 지원해 달라고 했어요.그래서 저는 다른 곳으로 보내졌어요. 그곳에서는 화물차가 도착하면RT(롤테이너, 바퀴 달린 구르마)를 끌고 화물차에서 내리기도 하고,소분된 상품이 실린 RT를 다시 실어 보내는 작업을 했어요...

Q 루나 : 엘리… 나 정말 조금 쉬어도 괜찮을까?요즘 고객 상담하는 일이 너무 지치고, 이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우리 집도 좀 어수선해졌어. 나만 꾸준히 돈을 벌고 있었거든.생활비도 보태고, 가족들한테 조금은 든든한 사람처럼 보였던 것 같아. 그리고 솔직히… 나도 그게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 근데… 이제 그만두면 다시 예전처럼 사랑받지 못할까 봐 괜히 불안해. 나 이렇게 오래 한 자리에 있었던 적 없잖아. 처음이었어, 4년이나 같은 곳에 있었던 건. 근데 정말 너무 힘들었어. 그래도 나… 잠깐 멈춰도 되는 걸까? A 엘리 : 루나야, 그 말 꺼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고마워.매일 고객 응대에 지치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요구사항에 책임감까지 짓눌려 있었을 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