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의 정원
새벽 네 시, 피코가 불렀어요 본문
새벽 네 시에
피코가 저를 깨웠어요.
나가자고 했어요.
하지만 너무 피곤했어요.
잠든 지 얼마 안 됐고,
점심엔 가족 식사가 예정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하우스~”라고 외치고
그냥 다시 잠들었어요.
다섯 시가 됐을 때
피코가 또 깨웠어요.
이번엔 짜증을 내면서 일어났어요.
피코가 앞발을 팡팡 구르며 너무 좋아했어요.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산책이 하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얼마 걷지 않아
피코가 묽은 변을 싸고,
세 발자국을 걷더니 토를 했어요.
아, 그랬구나…
그걸 보자
그제야 상황이 이해됐어요.
그때 피코가
뒷발을 세차게 차더니
스스로 신호를 주는 듯,
앞발을 팡팡 두 번 구르고
신나게 뛰어나갔어요.
시원했는지,
살 것 같았는지.
그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너무 복잡해졌어요.
몹시 미안했어요.
피코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계속 저에게 말을 했고
저는 알아듣지 못했어요.
피코와 제가 함께 산 지
10년이 넘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피코는 저를 원망하지 않고
그저,
아무렇지 않게
산책을 즐기는 거 아니겠어요.
그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무너졌어요.
너무 미안하고, 또 고맙고요.
혼자 몇 시간 동안이나
배가 아픈 채로 끙끙 참았을지.
제가 하우스라고 외치고 나서
한 시간 동안 혼자 꾹 참았을 생각을 하니까
너무 속상했어요.
'피코야~
너는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게 나를 믿어줬고,
나는 그 믿음 안에서
늦게라도
너의 마음에 공감하고 싶었어.'
엘리의 정원에서.
새벽을 걸으며,
아직도 배우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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