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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마음잡기

사랑해, 나의 쁘띠 세탁기

정원지기 엘리 2025. 1. 23. 20:36
나의 사랑 쁘띠 세탁기

 

 나의 사랑스러운 세탁기가 열심히 잘도 돌아간다. 독립할 때 산 첫 세탁기이다. 그때는 돈도 없었고, 잠시 쓰다가 중고 시장에 내놓을 요량으로 산 3kg 용량의 세탁기와 벌써 12년째  동거 중이다. 

 나는 현재 백수다. 백수가 된 지 2년이 넘었다. 몸과 마음이 아팠다. 몇 개월 쉬고 나면 회복되겠지 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아파졌다. 돈이 떨어졌고, 가족과 친구들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세상 지질한 나와 조우하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분노가 일었었다. 나의 세탁기에게도.

 

 우리 집은 상가건물 2층에 있다. 배달 오토바이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고 올라오는 담배 냄새에 화가 치밀었다. ‘저 집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게다가 이놈의 집 하수구는 정말 자주 막힌다. 주인아줌마한테 전화하면 “나는 할머니라 잘 몰라요” 라며 갑자기 할머니 연기를 한다. 하지만 재계약할 때는 갑자기 똑똑한 집주인으로 변신하다. 속이 터졌다. 중국산 저렴이 청소기는 강아지 털을 제대로 빨아들이지 못했다. 늘 양말에 털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코가 간지러워왔다.(나는 짜증이 나면 코가 간지럽고 더 심해지면 재채기가 난다.) 에어컨은 왜 이렇게 안 시원한지, 아무리 온도를 내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절망하게 했던 건 세탁기였다. 요즘은 인기 없다는 드럼세탁기인데 종료 후 뚜껑을 열어보면 뚜껑에 거품이 가득이었다. 숨이 턱 막히면서 심장이 뜨거워졌다. 수건으로 뚜껑 부위의 거품을 닦아내고 다시 돌려보지만 여전히 거품이 잔뜩 묻어 있었다. 결국 빨래를 꺼내 손으로 몇 번이고 직접 헹궈냈다. 허리가 끊어지는 듯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왜 세탁기 너마저 나를 괴롭히는 거야.’

 

왜 너마저 나를 괴롭히는거야

 

 그렇게 한참을 나와,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내가 소유한 물건들을 미워하고, 그들에게 분노하며 보냈다.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졌다. 무인도에 나 혼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아르바이트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몸이 따라주지를 않았다. 늘 기운이 없고, 어지러웠다. 새삼 노력하지 않는 인간들을 비난했던 내가 우스웠다. ‘아 노력을 하고 싶었지만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결국 대출 한도를 꽉 채워 대출을 받았다. 대책이 없었다. 빨래를 넣으며 오래된 세탁기가 멈추지는 않을까 불안이 엄습해 왔다. ‘세탁기야 제발 무사히 작동해 줘. 고장 나면 안 돼.’ 기도하는 마음이 절로 올라왔다. ’  ‘제발 아무것도 고장 나지 마. 아무것도…’ ‘나는 너무 무서워,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마…’  하지만 청소기가 결국 고장이 났다. 아무것도 빨아들이지 못하면서 힘 없이 소리만 윙윙 냈다. 강아지 털이 많이 빠져서 청소기는 꼭 있어야 하는데, 너무 속이 상했다. 우두커니 멍하게 서 있는데 문득 처음 독립했을 때 사용했던 부직포가 떠올랐다. 청소기 살 돈이 없어서 밀대에 부직포를 끼워 청소하곤 했었다. 새벽 배송으로 다시 받은 부직포를 밀대에 끼며 바닥을 미는데 순간 웃음이 났다. ‘내 인생 정말 바닥이구나. 정말. 처음으로 돌아갔어.’ 

 

꿈꾸는 작은 방

 

 반지하 방에서 동생이랑 방을 같이 쓰던 그때, 높은 연봉에 지방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제안이 들어왔었다. 서른 살이었다. 첫 독립생활을 타지에서 시작한 다는 것이 무섭기도 했지만, 우선은 반지하에서 탈출을 하고 싶었다. 쾌쾌한 냄새도, 동생이랑 좁은 방에서 투닥거리는 것도 더 이상 싫었다. 이사를 한 뒤에는 온갖 그곳의 좋은 점을 찾으며 적응하기 위해 애를 썼다. 우선 공기가 좋고, 월세도 쌌다. 주변에 어떤 편의시설도 없었지만, 마냥 좋았다. 무려 투룸이었다. 시골에서 무료했던 나는 혼자 방 안에 앉아 영화를 보곤 했다. 하루에 세 편씩도 보고 그랬다. 베란다에 나가서 하늘을 보며 음악도 듣고 그랬다. 내 힘으로 이룬 자그마한 자유였다. 퇴직금을 고스란히 집 보증금으로 내고 나니 살림살이 살 돈이 없었다. 가구는 이케아 가구로 채웠다. 가전제품은 무조건 다 작은 걸로 샀다. 집이 텅 비어 있어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세탁기는 이전 세입자가 쓰던 걸 그냥 썼었는데 며칠이 안돼 고장이 났다. 동네 대리점에 가서 가장 작고 예쁜 세탁기를 샀었다. 1인 가구가 쓰기 좋다고 했다. 내가 언제까지 여기 살지 모르니 작은 게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큰 세탁기를 살 돈이 없었다.) 혹시나 내가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외국으로 떠날지도 모르지 않은가. 세탁기를 볼 때마다  흡족했다. 내 힘으로 처음 산 예쁜 쁘띠 세탁기.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직장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인정에 목말랐지만, 아무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과도하게 일했다. 연봉으로라도 보상받고 싶었다. ‘난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 그럼 돈이라도 많이 줘.’ 연봉은 올라갔다. 그럴수록 나는 메말라갔다. 그저 고통스럽기만 했다. 7년 만에 다시 나의 작은 살림살이들을 챙겨서 서울로 올라왔고, 한창 코로나가 유행할 때라 자연스레 집에 고립되었다.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대학원도 다니고 직장 생활도 했지만,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고 퇴사를 했다. 그 후부터 나의 백수생활이 시작된 것이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였다. 남들처럼, 안정적으로 사는 것. 처음 독립하던 그때는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세탁기가 훨씬 큰 세탁기로 변해있을 거라고, 냉장고도, 청소기도, 이케아 가구도 훨씬 더 좋은 것들로 변해있을 거라고. 꽉 차 있을 거라고. 내가 노력만 한다면 말이다.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며, 꿈에 젖어 있었다. (그때 한창 우디앨런 영화에 빠져있었는데, 영화 속에 나오는 뉴욕이, 파리가 내 세상이었다.)

 

다시 시작!

 

 기나긴 2년 반이라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난 그즈음, 부직포를 밀대에 다시 끼던 날, 나는 다시금 나에게 사랑을 느꼈다. 나는 이제 두 번째 독립을 시작하려 한다. 세상의 인정과 칭찬으로부터, 그리고, 부모와 가난에 대한 원망으로부터의 독립을 결단했다. 독립을 선언하고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제부터는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대출금도 갚아야겠지만 말이다. 요즘은 무사히 잘 작동해 주는 세탁기에 고마워하며 빨랫감을 넣는다. (참고로 친환경 세제로 바꾸고 나니 거품이 안 남는다.) 백수인 나도 나름 괜찮아졌다. 2년 반이나 놀았는데 생각보다 멀정하지 않은가? 이래도 저래도 다 괜찮다. 사랑해 나의 쁘띠 세탁기, 사랑해. 어떻게든 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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